이웃과 가족, 그리고 세상사람들~
읽다 보면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조연이 되는 가족극장
이 장편소설은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세상사람들의 삶을 한 편의 연극으로, 영화로 극장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극장과 영화관을 가져다 놓은 책이다. 읽다 보면 어느새 모두가 배우가 되어 있고, 여기도 엿보고 있고, 저기도 엿보고 있다. 또한 여기는 어떨까, 저기는 어떨까 하고 기웃기웃하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이다.
주인공인 ‘나’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보다 약자라고 해서,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아직 사람의 형체를 갖추지 않은 작은 생명이라고 해서 함부로 다뤄지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며, 작가는 세상사람들의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 작가 의도 ]
이 책의 화자인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젖도 떼기 전에 버림을 받았다.
동냥젖으로 생명을 이어가게 된 주인공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을 품으며 성장한다.
고모의 손에서 자란 주인공은
고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금자 언니가 아기를 잃게 되는 것을 보자,
어머니에 대해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러던 가운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도
배 안의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효순 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다시 느낀다.
결국 주인공인 어머니로 해서
자신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 소설의 시작은,
작가의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작가의 막내 여동생이 젖동냥으로 허기를 달랬던 적이 있다.
그 모습에서 생명의 강한 의지를 작가는 보게 된다.
힘차게 젖꼭지를 빨고 있는 막내 여동생의 이마에 불거진 푸른 정맥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작가는 지난 2007년 12월 7일
기름이 유출된 태안의 바다와 자주하게 된다.
그때의 참혹함은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검은 기름을 흠뻑 뒤집어쓴 채 죽어가던 생명체들의 모습은
마치 낙태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태어나는 아이들보다 낙태되는 생명이 더 많다고 한다.
태중에 있다는 것만으로 태아의 생명권이 함부로 다뤄지고 있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어머니라고 해서
그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까지는 없다.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 어머니와 분리된 하나의 개체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
<달의 계곡>도 한때는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었던 바다였다고 한다.
풍화 침식이 진행되면서 협곡으로 변한 <달의 계곡>은
이제 생명을 품고 싶어도 품을 수 없는 협곡이 되어 버렸다.
그런 것처럼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이 소설의 제목을 <달의 계곡>이라고 붙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책 속으로 ]
길바닥에 칵, 퉤 거리며 함부로 침 뱉지 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가족들과 식사를 하거나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거나
단잠에 빠져 있거나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다.
길바닥에 칵, 퉤 거리며 함부로 침 뱉지 마라
우리보다 먼저 떠난 이들이 누워 있는 곳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곳에 누워 있다
(5쪽)
딸아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열일곱 살짜리 딸아이가….
지금 내 앞에서 사랑을 운운하고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어미라는 허울을 쓰고 앉아 딸아이와 입씨름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한심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 ‘어미’라는 이름을 분분히 벗어던지고 싶다.
(<프롤로그> 중에서)
대통령님께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
바쁘신 대통령님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어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제 편지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편지들을 보시고, 답장을 하셔야 될 텐데….
……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 같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이 세상의 푸른 새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95~197쪽)
어미와 아비는 우리 은숙이를 위해
늘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른 가치관 속에 정해진 결정이라면
어미와 아비는 채근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미와 아비는 지금 너의 잠든 모습을 보고 있다.
배안의 짓을 하느라 한 번씩 눈을 치켜뜨고는 마치 우리를 향해 웃듯 입가를 씰룩거리고 있는 아가야.
1958년 1월 18일
(243쪽)
그래 어쩌면 나를 버리고 떠난 내 엄마나 지금 네 앞에 앉아 있는 나나, 네 태중에 있는 아이나, 우리는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는지도 모르지. 서로에게 상처를 내면서 흠집을 내기도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지. 우리 몸의 중심부 배꼽이 한때는 붙어 있었던 탓에 지금도 갖다 대기만 하면 붙을 것 같은. 그래서 부실하지만 서로를 바라다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어쩌랴. 내 사랑을 위해, 너를 떠나기에는 내가 그렇게 영악스럽지도 영리하지도 못한 것을.
(<에필로그> 중에서)
[등장인물 소개]
정은숙(나): 현재 61세며 영문 소설을 번역하는 일을 한다. 영철과 결혼하지만, 딸 채희를 낳은 지 5년 만에 파경을 맡는다. 혼자 채희를 키우던 중 미성년자 인 채희가 임신을 하자 어떻게든 중절 수술을 시키려고 한다.
딸(오채희):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다. 은숙과 영철의 사이에서 태어난다. 임신한 아이를 낙태시키자고 하는 엄마 은숙과 대치한다.
고모(정순임): 은숙의 고모이며 아버지들의 무능함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억척스럽다.
고모부(서재동): 은숙의 고모부이며 허풍스럽고 귀가 얇다.
찬수 오빠: 고모의 아들이다. 은숙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며 짝사랑의 대상이다. 은숙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한다. 경희 언니와 결혼을 해 현재 대형 할인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선애 언니: 인찬으로 해서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다. 현재 단역 배우다.
오영철: 은숙과 젖을 나눠먹고 자란다. 은숙의 전남편이며 채희의 친부다. 현재 퇴직을 앞둔 공무원이다. 재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영철 엄마(양끝순): 영철의 엄마이며 은숙에게 친엄마보다 더한 인물이다. 현재 요양원에서 지낸다.
경희 언니: 만홧가게 김영달씨의 딸이며 찬수오빠를 두고 은숙과 라이벌관계를 이룬다. 훗날 찬수 오빠와 결혼한다.
굿모닝 아저씨: 경희 언니의 아버지며 만홧가게를 꾸려 생계를 유지한다. 부업으로는 춤을 가르치기도 한다.
월남 아줌마(송혜숙): 고모의 집에 사는 세입자로서 남편을 월남에 보내고 혼자서 명섭, 진섭을 키우며 지낸다.
한명섭: 월남 아줌마의 큰 아들이다. 은숙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생이며 절친한 친구 사이다. 은숙을 짝사랑한다.
진섭: 월남 아줌마의 둘째 아들이며 명섭이의 동생이다.
이금자 언니: 가난한 집의 맏딸로 태어나 모진 세상풍파에 시달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대변한다.
미제 아줌마: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팔러 다닌다. 이재에 밝다.
오복상회 아줌마: 가게채에서 쌀과 석유를 배달하는 오복상회 안동찬 씨의 아내이다.
유재갑: 고모의 집에서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며 생활하는 싱글대디다.
조상필: 금자 언니와 사랑에 빠졌지만, 더 낳은 환경을 찾아 금자 언니를 배신하는 인물이다.
창고방 아저씨: 도박에 빠진 아내로 해서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금자 언니로 해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한복 할머니(한복희): 한국전쟁의 희생양이다. 전 재산을 학교에 기부하는 인물로서 부모가 없는 은숙을 친손녀처럼 돌봐준다. 집안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효순 언니: 이 시대의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인찬의 누나다.
인찬 씨: 효순 언니의 남동생이며 경희 언니를 짝사랑한다.
[ 한 줄의 이벤트 ]
이 책에는 작가의 의도에 의해 한 행을 띄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그 한 줄을 채워볼 수 있도록 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 작가와비평 출판사 메일(mykorea001@hanmail.net)을 통해 쪽수와 한 줄의 글을 보내주시면, 정답을 맞추신 독자에게는 작가와비평에서 발행된 책 중 원하시는 도서 한 권을 증정한다고 하니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지은이 박민형 ]
1996년 ≪월간문학≫에 단편 <서 있는 사람들>로 소설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으로는 <황달수 연구 주임>, <금색 종>, <뒤꿈치 들기>, <부러진 날개로 날 수만 있다면>, <우회로>, <술 마시는 여자>, <화해>, <성주 가는 길>, <젓가락>, <참을 수 없는 웃음>, <달의 계곡> 등을 발표했다. 장편소설 ≪침묵과 함성≫(2000)으로 문예진흥원창작지원 수상작에 선정되었으며, 장편소설 ≪4번 출구는 없다≫(2011)와 ≪어머니≫(2017)를 펴냈다. 그 밖으로는 KBS 악극 <빈대떡 신사>(2003), cpbc(가톨릭 평화방송) 창사 특집 드라마 <강완숙>(2007), <동정 부부 요한 루갈다>(2010)의 극본을 썼다.
[도서명] 달의 계곡
[지은이] 박민형
[펴낸곳] 작가와비평
국판(148×210) / 328쪽 / 값 13,800원
발행일 2018년 4월 30일
ISBN 979-11-5592-219-4 03810
분야: 문학> 한국문학>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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