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광인(成功狂人)은 누구인가?
그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깃들어 있으면서도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들 자신은 ‘성공학’을 열심히 반복학습하면서도 친구나 연인에겐 권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우리 사회에 불어대는 성공학·자기개발·힐링 열풍의 실상과 허상을
최초로 문학의 프리즘을 통해 본격 검증한다!
[작품 소개]
대한민국은 자기개발 열풍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자기개발이 아닌 자격증, 소위 말하는 스펙을 올리기에 열중할 뿐이다. 대기업이 취업하는 것이 자기개발인 것인가? 중년의 나이에 창업신화를 이루는 것이 자기개발인 것인가? 자기만족 또는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스스로의 능력(육체 혹은 정신)을 개발하는 것이 자기개발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을 위한 기본 능력을 키우는 것(자격증 취득, 토익 만점, 창업성공)이 자기개발이란 말로 둔갑된 지 오래이다.
자기개발을 위해 자기개발서를 읽고, 유명 강사의 성공 스토리 강연에 참가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동호회를 만들어 세미나에 참가하고.
자신이 바라는 꿈을 위해 지식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성공을 따라 그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쫓고 있는 것이 지금의 안타까운 자기개발의 현실이다.
근래에 자기개발서에 대한 비평을 담은 책도 출간되었다. 무엇인가 큰 지지를 받을 때, 그것에 대한 비판도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다. 이제 자기개발의 열풍은 극에 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자기개발과 성공이란 허상에 대해 비판하고 풍자하고 있다.
성공을 꿈꾸는 여러 군상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한 하숙집,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깃들어 살고 있다. 1층에는 재수생, 남대문 시장의 점원, 막노동꾼, 사업에 실패하여 재기를 도모하는 중늙은이, 정체불명의 사내, 가수 지망생 등등과 2층에는 증권회사 직원, 대학생, 영어 학원 강사, 여주인의 둘째와 막내딸들이 살았다. 작은 하숙집에서조차 사회에서 계층을 나누듯이 그렇게 상하로 나뉘어 있었다.
어느 날 주인공(삼류 작가)이 사는 하숙집에 대머리 사내가 찾아온다. 사내의 직업은 성공철학이 담긴 자기개발서 전집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그 사내 역시 성공을 좇아 서울로 상경하여 이 하숙집에 투숙하고자 하지만 빈 방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여주인은 사내에게 다른 하숙집을 구해보라고 하지만 좋은 기운을 느낀 이곳에서 꼭 살아야겠다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계단 밑의 작은 공간을 방으로 개조한 곳에서 살고 있는 청년에게 밀린 방세를 빌미로 동숙을 권하고 대머리 사내는 자신은 상관없다며 하숙을 시작한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대머리 사내부터 시작하여 주변의 인물들이 얽힌 성공에 관한 삶의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성공철학을 전파하려는 대머리 사내, 그에 감화돼 성공을 부르짖는 청년, 성공한 삶이라고 보이는 노(老)작가,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직원, 교회마저 성공을 강요하고 있다고 설법하는 목사, 도를 깨우쳐 번뇌를 없애고 싶다는 삿갓 사내 등 여러 인간의 군상을 통해, ‘성공’의 진실과 허상을 밝히고, 도대체 성공이란 무엇이며, 성공을 좇는 성공광인은 누구인지를 문학이란 장르를 통해 검증하고자 하였다.
자기개발이란 자아성찰을 위한 토대인가 아니면 성공을 위한 단순한 발판인가?
[작가의 말]
성공학-자기개발 광풍은 신흥 사이비 종교와 유사한 점이 있는 성싶다. 진정한 자기계발은 실행하지 않고 자기개발서의 로봇처럼 된다. 허구한 날 자기개발서만 보면서 현실의 삶을 유예하며, 그것은 공상과 몽상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의 일종으로 변질된다. 자기개발 서적을 구입해 읽으며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이나, 그런 책을 직접 써대고 강연하는 사람이나 겉으로는 번지레해 보여도 속으로는 그다지 편안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문제이다.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힐링’은 어떤가? 아무리 유명하고 학식 높은 멘토들의 ‘말씀’일지라도 일시적인 위안을 줄 뿐, 각 개인의 내면에 깊숙이 깃든 본질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진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사랑으로 쓰다듬으면서 대화해야만 상흔은 비로소 꽃으로 피어나지 않을까?
한국 성공학의 원조는 5.16 쿠데타 이후 진행되는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 정책으로부터 움이 튼다. 군인들이 ‘성공’한 것이다. 그 후 삼성, 엘지 등 대기업의 사원 연수원이 자기개발의 텃밭이 되었으며 뒤이어 전국민의 생활 속으로 퍼져 들게 된다.
성공의 의미가 유동적이듯 이른바 ‘성공학’은 정립되어 있지 않다. 책은 해마다 화장만 조금씩 바꾸고는 쏟아져 나오는데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비평은 전무한 실정이다. 시중에 번역되어 나온 서적들은 미국과 일본의 것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일본의 책은 종교색을 배제한 채 아이디어의 산출과 적용을 지향하는 면이 강한 데 비해, 미국식 성공학은 기독교의 교리를 배경으로 해 인간의 의식과 감정까지 개조하려는 의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패를 거듭한 범상한 사람들의 허약해진 자아는 갈림길에서 시름에 잠길 수도 있을 터이다. 자신의 의식을 저당잡히고 성공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지, 다른 방도는 없는지 모색해 봐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많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는 한국의 사회구조와 이곳에서의 삶의 양상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사실상 한국인은 조선 말기 이후 지금껏 고유의 성공 철학을 가꾸어서 생활에 적용할 기회가 없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일본과 미국에 예속되어 온 마당에 일개 처세술이 고유하기를 바라긴 어렵다.
성공학 서적들은 개인의 내적 변화와 초인적 노력에 초점을 맞출 뿐 사회구조의 변혁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하기야 미국 같은 곳에서는 그럴 만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잘못된 구조 하나를 개선하는 게 만인의 성공과 성취에 훨씬 더 도움이 될 수가 있다.
성공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찾아보자는 것일 뿐. 성공하는 방법이 설령 아무리 좋더라도,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자가 더 많다면 그 방법은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풍토와 심성에 맞는 성취학이 필요하며 그것을 탐구해 보는 것도 긴요한 일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우선 현상을 객관적으로 짚어 보고 참다운 삶을 위해 지양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하나의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적어도 성공광인(成功狂人)이 되진 말아야 하지 않을까?
[본문에서]
"서울역은 조금쯤 겉늙은 사람처럼 낡아 버린 인상이다. 그러나 사실은 더 젊어졌는지 늙었는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돔형 지붕의 석조 건물인 구舊역사는 세월의 풍상을 간직한 채, 이젠 역은 역이되 역이 아닌 영역에 존재한다. 오래전 경부선 열차를 타고 와 저 역에 첫발을 딛었을 때 나는 그리고 너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기억도 풍화되었는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 옆에 새로 건축한 민자 역사는 아무리 봐도 가건물인 것만 같다. 차가운 철제 골조에 통유리로만 구성되어 경망스럽고 천박한 느낌을 주며, 마치 한탕한 뒤엔 어디론가 옮겨가 버릴 사기꾼의 가설무대를 연상시킨다. 저런 곳을 통해서는 더 이상 여행을 떠나고 싶지가 않다. 비즈니스를 위한 여행이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 하숙은 역 맞은편의 동자동에 있었다. 길목엔 큰 입시학원이 있어 용문(龍門)을 오르려는 잉어와 붕어새끼들이 우글거렸고, 바로 옆 동네인 양동은 음습한 기운을 풍겼으며, 멀리 우뚝 솟은 대왕 빌딩의 유리창은 위성들을 거느린 태양처럼 번쩍거렸다. 그리고 갈월동을 지나 남영동 쪽으로 쭉 내려가면 미군부대가 위압적인 태도와 자세로 진을 치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코리아 속의 아메리칸 할렘이라고도 불리는 이태원이었다. 한마디로 삭막하고도 소란스런 동네였다. 그 부근의 집들은 대개가 미감이나 정감이라곤 일부러라도 느끼지 않게 하겠다는 듯 칙칙하고 우람스럽기만 한 담으로 둘러막혀 있었으며 담 위엔 쇠창이나 유리조각을 촘촘하게 박아 놓았다." (7~8쪽에서)
“성공철학은 언제부터 입문하게 되셨어요?”
“음, 20년이 넘었지 싶군. 처음에는 이 비틀린 다리를 한번 성공학적으로 치료해 보려고 시작했었지. 왜, 형씨도 한번 해보실라우?”
“성공학이란 게 미국에서 나왔잖아요. 그게 우리 실정에 맞을까요? 신토불이란 말이 유행했었지만, 심천불이란 말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심천불이?”
“몸과 땅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게 좋다면, 하늘과 마음도 상생 관계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이야 원래 하나로 통해 있는걸 뭐.”
“그렇다곤 해도 정신적으로 변질되고 예속된 게 많으니까요. 아무튼 너무 무리하면 정신건강에도 해로울 것 같아요.”
“성공철학 말이오?”
“네. 성공학이든 자기개발이든, 한국에서만 유독 무비판적이고 맹종적으로 광풍이 불고 있지, 외국에서는 이미 비판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어요. 현실을 무시하고 몽상에 빠져 인생을 오히려 망치게 한다는 거죠. 그리고 성공학이든 자기개발이든 그게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텐데 도리어 인간의 자아를 괴롭히고 변질시킨다는 거예요.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정녕 그런 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말예요.”
(327~328쪽에서)
[지은이 소개]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작가와비평’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이 채택되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보리울의 달>>이 있고, 1960~1970년대의 개발독재 시대에 사회에서 밀려나 외딴 선감도(仙甘島)에 강제수용된 부랑아들의 참혹상을 그린 장편소설 <<청춘의 지옥>>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도서정보]
도서명: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
지은이: 김영권
펴낸곳: 작가와비평
국판 / 336쪽 / 값 12,000원 / 2013년 09월 10일
ISBN 979-11-5592-047-3 03810
분야: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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