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의 단편을 통해 그의 다양한 작품상을 살펴볼 수 있는 책
도스토예프스키 단편선
: 여섯 색깔 도스토예프스키
여섯 색깔의 도스토예프스키
소박하지만 다채로운 도스토예프스키를 들여다보자
『도스토예프스키 단편선: 여섯 색깔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장편 소설들로 잘 알려진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세계를, 기존에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단편들을 통해 다양한 경로로 되짚어 감상해 볼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을 가진 책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 구원의 궁극적 가능성이라는 고원(高遠)한 관념들과 함께 인간 내면에 잠재한 불가해한 이상(異常) 심리까지도 함께 파고든 그의 장편 소설들은 그만큼 독자들에게 고난이도의 독서를 요구한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이 가지는 또 하나의 강점이면서 동시에 간과되기 쉬운 측면은, 위대한 사상과 심도 있는 인간 심리 관찰이 창작 초기로부터 시베리아 유형 전후, 그리고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편들 속에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단편들은 작가의 성장 과정을 여러 측면에서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들, 다시 말해 중・후기의 대작들이라는 큰 줄기와 연결되는 뿌리, 새싹, 가지와 같은 것들이다. 또한 이 단편들 중 상당수는 대작들에 비해 더 현실적이고 소박한 배경을 토대로 주제를 더 압축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역자는 이러한 의미를 가진 단편들 다섯과 연설문 하나를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이 내뿜는 여섯 색깔의 스펙트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보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정직한 도둑」, 「보보크」, 「농부 마레이」, 「우스운 인간의 꿈」, 「뿌쉬낀에 대하여」 등의 단편들과 연설문은 당대 상류 사회의 속물성, 파멸해 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 인간 구원의 최초의 가능성, 러시아 농민들의 정신적 위대함, 자기중심주의의 극복과 진실한 삶, 러시아 민족의 사명 등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주요 주제들을 거의 다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렇듯 소박한 분위기와 다양한 색채의 작품들을 통해 그가 인간의 삶을 결코 하나의 고정된 시각으로 해석하려 들지는 않았다는 점 역시 드러난다. 그렇기에 이러한 작품들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흐름을 제대로 알기 위해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책 말미에는 「작품 해설」을 통해 각 작품에 내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핵심적인 생각들을 설명하였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문학 경력의 주요 사항들을 서술한 <작가 연보>를 끝머리에 두어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생소한 독자들도 작품 이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책 속으로■
사람들은 그녀가 이제 갓 16세가 되었다고 말들을 했다. 나는 유심히 신랑을 바라보다가 그가 정확히 지난 5년 동안 보지 못했던 율리안 마스따꼬비치임을 깨달았다. 나는 신부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나는 사람들을 헤치며 서둘러 교회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신부가 부유한 집안 출신이고 50만 루블의 지참금이 있다… 결혼 비용도 상당하다… 등등의 말이 군중 속에서 들려 왔다.
“어쨌든 계산은 정확했군!”
거리로 빠져 나온 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중에서
나리, 그는 내 앞에 누운 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일감을 쥐고 창가에 앉아 있었고 할머니는 난로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우린 모두 한 마디 말이 없었습니다. 나리, 저는 그 사람, 그 술주정뱅이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내 친아들을 떠나보내는 것 같더군요. 굳이 그를 쳐다보지 않더라도, 그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그가 뭔가를 참고 있다는 것, 어떤 말을 하고 싶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정직한 도둑」 중에서
아니, 이런 건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이들이 현대의 죽은 자들이라는 것인가! 하지만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좀 더 들어보기로 하자. 난 이 코흘리개 신참의 얼굴을 조금 전에 관 속에서 보았던 것이 기억난다. 몹시 놀란 병아리 같은 표정, 그건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 다음 상황을 좀 더 보자.
―「보보크」 중에서
그리고 그는 나에게 성호를 그어 주더니 자신도 성호를 그었다. 나는 거의 열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면서 갔다. 내가 가는 동안 내내 마레이는 자신의 말과 함께 서서 내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 주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사람 앞에서 그토록 경악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좀 부끄러웠다. 하지만 난 계곡의 비탈을 올라가서 첫 번째 곡물 창고에 이를 때까지도 여전히 늑대가 나올까봐 무척 겁을 내며 걸어갔다.
―「농부 마레이」 중에서
그래, 그렇다, 결국은 내가 그들 모두를 타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분명히 기억이 난다. 꿈속에서 그 일이 몇 천 년에 걸쳐 일어났기에 나에겐 단지 전체적인 느낌만이 남아 있다. 내가 아는 건 죄악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뿐이다. 돼지에 기생하는 추악한 선모충(旋毛蟲)처럼, 온갖 나라들에 퍼지는 페스트 병균처럼 나는 내가 오기 전까지는 죄를 짓지 않았던 행복한 나라를 나 자신으로 감염시켰던 것이다.
―「우스운 인간의 꿈」 중에서
그는 민중 위에 서 있는 우리 상류 사회의 심연을, 한 순간에 가장 분명하고도 명철한 방식으로 지적해 내었습니다. 예전부터 우리 시대까지에 걸친 러시아 방랑자의 유형을 식별하여 그 방랑자의 역사적 의미와 미래에까지 유효할 그의 거대한 의미를 자신의 천재적 직감으로 파악해 낸 후, 그의 곁에 의심 할 바 없이 아름다운 러시아 여인의 유형을 함께 설정해 놓은 뿌쉬낀은, 러시아 문학가들 중 처음으로 러시아 민중 속에서 발견한 일련의 아름다운 긍정적 인물들의 유형을 이 시기의 자신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우리 앞에 제시한 바 있습니다.
―「뿌쉬낀에 대하여」 중에서
■목차■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정직한 도둑
보보크
농부 마레이
우스운 인간의 꿈
뿌쉬낀에 대하여
작품 해설: 여섯 색깔 도스토예프스키
작가 연보
■옮긴이■
■백준현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동대학원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외대, 성균관대, 상명대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1998년부터 상명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도스토예프스키, 뿌쉬낀, 레르몬또프를 위주로 하는 19세기 러시아 소설이며, 실용 러시아어 어휘론을 비롯한 러시아어 학습서들도 저술하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작으로 「뿌쉬낀의 「벨낀 이야기」에 나타난 벨낀과 역사성의 문제」, 「도스토예프스키 초기작들에 나타난 인간관」,『러시아 현대 소설 선집』2(공역),『중급러시아어』,『중급러시아어』2 등이 있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땅콩집 이야기 7080(강성률 장편소설, 작가와비평 발행) (0) | 2016.05.24 |
---|---|
바다로 간 오리(꿈은 이루어진다: 성장동화, 김제철 지음, 작가와비평 발행, 2014년 세종도서 우수문학도서) (0) | 2015.06.24 |
포산 들꽃 (이상규 지음/ 작가와비평 발행) (0) | 2015.03.25 |
빛이 떠난 자리 꽃은 울지 않는다 (조성범 지음/ 작가와비평 발행) (0) | 2015.03.25 |
마이너리티리포트 (황숙진 지음/ 작가와비평 발행) (0) | 2015.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