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구성한 글들이 쓰인 시기는 문학의 주변화와 왜소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던 때였다. 심지어 ‘문학의 종언’이라는 유령이 한동안 문학판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작가는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많은 문학잡지와 도서가 출간되고 있었으며, 독자와 비평가는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문학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꿈과 열망을 담아내는 것이 문학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꾸준히 존재할 것이다. 그들에게 문학은 전성기를 구가하는 문화의 꽃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지금이기에 온전한 문학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1부에는 총론격의 글들을 모았다. 내게 세상을 바라보고 문학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있다면, 아마 여기에 숨어 있지 않을까. 2부에는 개별 작품론이면서 총론으로 나아가는 성격의 글들을 모았다. 3부에는 작가론에 해당하는 글들을 배치했으며, 4부에는 계간평과 단평들을 모아 놓았다.
▌책 속으로▐
인문학의 장에 불어오는 새로운 글쓰기의 물결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지는 근본적인 시각에서 찬찬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답적인 인문학적 글쓰기를 갱신하는 신선한 바람인가? 아니면, 알게 모르게 인문학을 상업주의의 마성에 들려 타락으로 치닫게 하는 트로이의 목마인가? (37쪽)
인문학은 ‘이중의 도약’에 성공해야 진정한 소통에 도달할 수 있다. 시장에서 팔리느냐 팔리지 않느냐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약’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인문학의 영역에서만큼은 시장에서의 성공이 곧장 그것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장에서의 도약이 다시 독자의 영혼과 정신을 일깨우는 또 다른 ‘목숨을 건 도약’에 성공할 때야 비로소 인문학은 진정한 소통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7쪽)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개인의 몸과 마음을 바꾸려는 온갖 형태의 노력은 기실 개인의 자발성을 빙자한 은밀한 강제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 은밀하게 강제된 틀에 자신을 끼어 맞추며 생존을 도모하는 개인의 노력은 처절한 바가 없지 않으며, 자율적 자아의 위축이 초래하는 극도의 내면적 공허감 역시도 위험 수위에 다다른 듯하다. 그럼에도 아이로니컬한 것은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에 비례해서, 냉혹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야만 하는 대중은 더욱 절실하게 희망의 환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자전소설의 미덕은 세속적 가치질서를 근원적 차원에서 승인하면서도 독립적 자아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펼쳐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위안과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점에 있다. 특히, 실제작가의 세속적 성취는 독자로 하여금 자전적 작품 속에서 구체적인 현실감이 묻어나는 자수성가의 신화마저 읽어낼 수 있게 만든다.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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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멜랑콜리아의 윤리
지은이: 이정석
펴낸곳: 작가와비평
신국판 / 320쪽 / 값 15,000원 / 2011년 04월 30일
ISBN 978-89-955934-6-2 9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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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제1부
자본의 제국, 기업사회 속 소설의 윤리
소통의 딜레마, 그리고 글쓰기의 어려움
공동체를 허물고 세우는 소설 건축술
자전소설 열풍에 담긴 대중의 욕망: 황석영・공지영・최인호의 소설을 중심으로
제2부
사실의 역사에서 실존의 역사로: 김훈 역사소설의 존재방식
브리콜라주로 빚은 잡설(雜說)의 지형학: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와 박상륭의 구도적 글쓰기
호모 나랜스, 실재, 서사: 임철우・조경란・천명관의 새로운 소설
2000년대를 열어 가는 작가들의 ‘차가운’ 소설들
제3부
대중문화적 상상력을 본격문학의 동력으로: 박민규론
작지만 경쾌한 소설들: 김애란론
불순한 소설미학, 불온한 정치성: 백민석론
육필을 통해 본 문학적 삶의 궤적: 김현론
제4부
궤변론자의 망상, 아웃사이더의 몽상: 박형서・김태형의 신작
여자의 눈물과 웃음, 그리고 남성의 위기: 천운영・우승미・김정남의 신작
그들의 변화와 지속: 김영하・서하진・권지예의 소설들
상류층과 하류층을 말하는 방식
역사의 진혼, 역사의 발견
비평의 비평
▌지은이 소개▐ 이정석
196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자란 안양 토박이다. 1987년 숭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해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며 인문학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1996년에 <김승옥 소설의 욕망구조 연구>로 석사학위를, 2003년에 <<한국 전후소설의 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광막한 학문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2004년 <브리콜라주로 빚은 잡설의 지형학: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와 박상륭의 구도적 글쓰기>로 경향일보 신춘문예 평론에 당선되어, 비평의 세계에 입문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는 <<전후소설 담론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새미, 2005)와 <<재일조선인 문학의 존재양상>>(인터북스, 2009, ‘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이 있다. 현재 숭실대학교 베어드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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