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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작가와비평

작가와비평 13호(2011년 6월)



[작가와비평 13호를 발간하며]

이번 호 특집은 <이 시대의 작가란 무엇인가>이다. 새삼 이 시대 ‘작가’의 존재론에 대해 묻는 이유는 각론의 필자들의 펼쳐놓은 이야기 속에 들어있다. 정의진의 <작가라는 현대적 역설>은 최근 이슈가 되었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작가의 사회적 위상’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글이다. 그는 작가, 곧 예술가가 국가나 후원자의 재정적 도움에 의지해서 살아가던 봉건 시대가 마감된 뒤, 자유와 생존적 위기를 동시에 끌어안은 작가의 운명, 즉 근대 ‘사회 비판의 담지자’로서의 작가와 근대 자본주의 출판 시스템에 종속된 작가의 존재를 역사적 맥락에서 추적하고 그 역설의 현장을 진이정에서 살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진이정, 또는 최고은 등은 반사회적 사회성의 담지자로서의 작가와 그로 인한 물질적 불편의 자발적 감수자로서의 작가를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진이정의 경우, “작가란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재규정되는 역사적 주체라는 현대적 정의”에 근접해 있는 작가이다. 즉, 정의진이 이 글을 통해 탐색하고 있는 우리 시대 작가의 사회적 위상이란, 결국 현재 봉착한 역설적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 ‘화두’를 다시 문제삼고 갱신해가는 ‘문제적 존재’라는 것이다.
<세계를 쓰는 자, 세계를 읽는 자>에서 조효원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일상적 삶의 내부에 있는 ‘인격’으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글쓰기의 장소에 머물면서 삶의 외부에, 비인간의 상태에 들어가는 작가이다. “진정으로 작가의 상태를 통과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삶을 죽음의 관점에서 영위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글쓰기 외부의 추위와 배고픔을 세계의 외부에 있는 작가 운명의 필연성으로 논의하고 있는 이 글은 일견 낭만적 작가론에 기대고 있는 듯한데, 보르헤스의 말을 빌어 ‘잠재적 유다’로서의 독자와 작가를 요청하고 있는 대목에 이르면 세속을 철저하게 거절하고자 하는 논자의 비판적 문학론을 만나게 된다.
임태훈의 <신체와 제로>는 소셜 네트워크을 비롯 각종 기기의 프로그램에 점령당한 인간의 감각과 사유를 해방하는 존재로서의 작가를 강조하고 있는 글이다. 그는 프로그래밍화된 기계에 종속되고 획일화되어가는 인간의 삶을 ‘신체’라는 자율적 생동성에 기반해 되돌리는 새로운 실천을 작가들에게 요청한다. 김대성의 <생존의 비용, 글쓰기의 비용: 우리 시대의 ‘작가’에 관하여>는 경험, 생활과 절연한 우리 시대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빈곤에 대해 ‘비평가’라는 (비)문학적 존재에 대한 물음과 함께 개진하고 있는 글이다.
박영희<나는 왜 르포를 쓰는가>는 작가의 실체험에 바탕한 육성이 돋보이는 글로, 르포를 통해 우리 시대 ‘문학’, 나아가 우리 사회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박영희의 육성은 위의 논자들이 문제삼은 반사회적 사회성으로서의 작가, 자발적 가난을 감수한 작가라는 위상이 어떻게 실제 작가에게 ‘실재’하고 있는지를 증언한다. 전업작가로서의 지독한 가난, 그리고 르포 작가로의 행로와 그 체험기는 바로 기본적 생계를 영위할 수도 없는 우리 시대 작가의 초상이면서, 문단이라는 ‘문학장’의 자폐성, 그리고 매스컴의 뉴스와 현장, 르포 등 각종 프로그램이 기반하고 있는 당파성과 이데올로기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소설가 노희준, 권여선의 글은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있는 점잖음, 그 품위의 거리를 가차없이 없애버리는 글이다. 현 문학 시스템 전반, 특히 비평가와 작가와의 관계를 묻고 있는 노희준의 글은 냉정한 비판적 시각은 물론 ‘지도없이 모험하는’ 작가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까지 지니고 있는 글이고, 권여선의 글은 한 편의 소설로도 손색 없을만큼 ‘작가’에 대한 리얼리티의 형상화가 뛰어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슬픈 우리 시대 작가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작가론’ 특집에서 보여주는 저 다양한 각론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시대의 작가는 여러 가지 기로 위에 서 있다. 통시적으로는 패트론으로부터의 독립과 문학의 자율성, 출판 자본에의 새로운 종속이라는 기로에, 공시적으로는 매체 변화에 따른 기존 문학적 관습의 해체와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 그리고 날로 진화하는 자본주의적 전체주의 메커니즘과의 인간 해방의 기획의 불가능성 등등. 과거 우리가 가졌던 ‘문학’에 대한 높은 위상에 비춰 본다면, 이제 ‘나는 작가다’라고 외칠 수 있는 지점은 모호한 듯하다. 빼어난 문장도, 자발적 가난도, 등단 시스템도, 사회적 비판의식도 작가 존재 증명의 발화지점이 아니라면? 즉, 우리는 현재 해체되고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작가’와 ‘문학’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와 비평>> 13호에서 주목한 작가는 손아람이다. 손아람은 내성화되고 피로해진 한국문학에 투박한 ‘진정성’과 ‘열정’을 앞세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노대원의 손아람론은 두 편의 소설분석을 통해 사회의식 측면에서, 또 문학적 측면에서 이 작가가 ‘도전’하고 있는 문제적 지점을 정치하게 살피고 있다. 이 문제적 작가의 문학적 패기 “소설은 무모하게 저돌적이고, 믿을 수 없도록 순진하고, 가망이 보이지 않게 고집스러운 한 인간이 삶 전제로 세상을 들이받아 만들어낸 것”에 숨겨진 오만과 불안의 줄타기, 그리고 집필과정을 자서와 대담에서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쟁점비평’으로 두 개의 글을 싣는다. 세계문학론과 ‘국가주의’에 대한 논의인데, 고봉준은 프랑코 모레티, 파스칼 카사노바, 댐로쉬 등의 세계문학론을 소개하고 <창작과 비평>의 세계문학론에 함의된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읽어낸다. 서용순의 <국가의 욕망과 존재의 재앙:존재의 같음을 열기 위한 시론>은 일본의 지진사태와 교과서 문제에서 출발해 이 시대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여기에 희생된 개별 존재들과 타자에 대한 책임감을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하승우의 <아날로그 인간의 키보드워리어 논쟁 감상기>는 박가분과 한윤형의 논쟁에 대한 논평과 이들의 저서에 대한 논평이다. 이들 진보논객에 대한 하승우의 읽기는 우리 시대 사회담론의 현장과 그 문제점을 짚어내는 동시에, 인문학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잉된 ‘말’들이 난무하는 공허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 시대의 작가론’ 특집을 묶어내면서 ‘작가와 비평’의 존재론을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각론들이 보여주는 그 다양한 스펙트럼만큼이나 우리 문학의 현재는 어지럽고, 비전 또한 모호하기 그지없다. 겉으로는 그지없이 평온한 나날이고 그 평온에 깃든 김빠진 일상만큼이나 지루한 반복들이 다시 반복되는 시간, 그러나 여전히 거리는 시끄럽고 문단 또한 활기차다. 이 가짜 평온과 활기를 내파해갈 문장들을 ‘작가와 비평’은 품고 있는가, 아니 그것을 생각하는 작가들과 비평가, 독자들은 있는가. 다시 ‘우리’를 심문해야 할 시간이다.

―편집 동인 최강민, 이경수, 고봉준, 이선우, 김정남을 대신해서
정은경 쓰다


[목차]

<<특집>> 이 시대 작가란 누구/무엇인가?

작가라는 현대적 역설: 최고은과 진이정을 기억하며 / 정의진
세계를 쓰는 자, 세계를 읽는 자: 작가란 무엇인가? / 조효원
신체와 제로 / 임태훈
생존의 비용, 글쓰기의 비용: 우리 시대의 ‘작가’에 관하여 / 김대성
나는 왜 르포를 쓰는가 / 박영희
전업평론가를 욕하고 싶어도 이건 뭐 있어야 말이지 / 노희준
끝내, 겨우 존재하는 작가 / 권여선


<<이 작가를 주목한다
>> 손아람
自書 / 손아람
<인터뷰> 작가에겐 착각을 누릴 권리가 없다 / 손아람・이선우
청춘의 열정을 위한 변론, 소수의견을 위한 법정 콘서트: 손아람의 소설 / 노대원

<<쟁점 비평>>
‘세계문학’이라는 문제: 『세계문학론』 읽기 / 고봉준
국가의 욕망과 존재의 재앙: 존재의 같음을 열기 위한 시론(試論) / 서용순
아날로그 인간의 키보드워리어 논쟁 감상기 / 하승우


[도서정보]

도서명 : 작가와비평 13호

발행처 : 작가와비평
엮은이 : 작가와비평 편집동인
전   화 : 02-488-3280 / 팩   스 : 02-488-3281
ISSN 2005-3754 13
252쪽/신국판/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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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user.chol.com/~writercri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