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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작가와비평

작가와비평 8호:::이 시대의 폭력과 예술 / 2000년대의 문화지형과 키덜트

 

[작가와비평] 8호는 처음부터 단행본 형식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다. 잡지 형식과 달리 많은 내용을 담지는 못했고, 가급적이면 주제나 기획의 의도에 충실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특집 1은 <이 시대의 폭력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현대의 철학과 문화에서 ‘폭력’은 점차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폭력’이라는 단어에는 구타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여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체의 행동을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평화’를 폭력의 반대개념으로 설정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오늘날 ‘폭력’의 문제는 일상화된 폭력이나 영화에서의 폭력미학 같은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도흠의 <폭력을 넘어서>는 폭력의 세 가지 축을 제국, 자본, 국가로 설정한 다음, 그것에 대한 서구적 혹은 동양적 대안담론들을 분석한 글이다. 김항은 <탈관계의 관계, 관계의 정립>에서 칼 슈미트의 주권 이론과 발터 벤야민의 폭력비판, 조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에 대한 사유를 데리다의 타자론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정은경의 <봉인된 폭력의 이데올로기>는 실제적 폭력에 대한 재현, 약육강식의 알레고리로서의 폭력, 구체적 현실을 환기하지 않는 미학적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분석하고 있고, 이경수의 <두 얼굴의 디오니소스>는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가족, 학교 등이 폭력의 산실로 그려지는 장면들을 분석하는 한편 패권주의와 테러리즘의 악순환 같은 전지구적 폭력이 어떻게 우리 시대의 시에 흘러들고 있는가를 살폈다. 박유희의 <짐승의 시간, 불안한 놀이>는 반사회적 행위로 의미화되는 폭력과 폭력을 재현하는 일련의 영화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이상 다섯 편의 글이 폭력에 대한 분석과 해법을 제공하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글들과 더불어 우리 시대를 이중적인 의미에서 ‘폭력’의 시대로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집 2는 <2000년대의 문화지형과 키덜트>이다. 이 기획은 2000년대의 첫 10년에 생산된 문학
(문화)을 ‘키덜트’라는 개념으로 통해 진단해보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필자에 따라 키덜트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용법의 차이가 있겠지만, 비성숙/반성숙에의 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최근 몇 년 간의 문화현상을 이 개념을 통해서 해명하려고 기획했다. 이번 기획에는 특별히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와 시인의 목소리를 실었다. 윤이형의 <키덜트 세대의 문학>은 ‘키덜트’라는 개념이 문학의 일정한 법칙과 가치를 강제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젊은 세대의 문학을 ‘키덜트 문학’이라고 평가하는 태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여태천의 <더 절실한 내적 기율>은 재미와 기발함을 추구하는 최근의 시적 경향에서 본질에의 불안을 느낌을, 나아가 가벼운 감각을 과대평가하지 않으려는 절제의 힘과 자기 반성적 태도, 진정성을 강조한 산문이다. 두 젊은 작가의 산문은 문학에 대한 그들의 내면을 정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독할 만한 글이다.
권경우의 <순수의 얼굴에서 폭력의 시대를 읽다>는 ‘키덜트’를 21세기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핵심어로 설정, 그것에서 현실을 탈출하려는 현대인의 욕망을 읽어낸 글이다. 현대적 폭력에 대해 현대인은 동심의 세계를 피난과 은둔의 장소로 설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그의 분석은 많은 점에서 ‘왜 키덜트인가’라는 물음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반면 최강민의 <키덜트 가면 속의 두 얼굴, 체제 저항과 순응 사이에서>는 반성장소설과 키덜트 문학이 지닌 저항적 가능성을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말초적 재미와 오락에 탐닉함으로써 오히려 후기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앞잡이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고봉준의 <아이, 그 반(反)성숙의 주체성>은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아이’의 형상과 목소리가 갖는 반성숙의 사회성을 분석한 글이다. 근대문학의 출발점으로서의 낭만주의가 조로早老의 문학이었음에 반대 낭만주의적 영향에서 벗어난 최근의 시들은 ‘아이’의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하려는 경향을 띤다는 것, 그 마이너스 성장의 사회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비평 대 비평>>에는 최근 비평담론에 대한 세 편의 메타비평을 실었
다. 최근의 비평적 흐름에 대해 논쟁적으로 개입하자는 [작가와비평]의 취지와 의지가 가장 강하게 묻어 있는 기획이고, 그런 면에서 다른 글에 비해서 가장 치열한 내용을 담고 있는 평문들이기도 하다.
김미정의 <포스트 네이션 공동체와 문학에 대한 단상>은 이른바 세계문학/한국문학이라는 구도에 대한 메타비평이다. 근대문학=민족문학이라는 등식에 익숙한 한국문학을 세계문학/한국문학이라는 새로운 구도 위에서 사유하고 있는 이 글에서 필자는 구도의 난경難境과 언어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 문제의식이 세계문학/한국문학이라는 구도를 넘어서는 지점에 도달하는 장면은 매우 흥미로운 비평적 모험이다. 허병식의 <역사의 심연, 문학의 윤리>는 이른바 ‘팩션’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에 대한 분석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역사를 사유하는 방식의 핵심에는 기억의 정치가가 놓여 있다는 것, 나아가 ‘팩션’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유행에 따라 이루어지는 역사의 전유인지, 새로운 기억의 정치를 통한 이야기의 창안인지에 달려 있다는 비평적 잣대를 제시한다. 조영일의 <장편소설 대망론에 대하여>는 ‘조영일답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길고도 논쟁적인 글이다. 문예지라는 제도적 형식, 그리고 문예지에서 비평이 차지하는 위상을 신랄하게 파헤치면서 필자는 오늘날 문예지는 권력의 상징이 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장편대망론과 관련하여 최원식과 서영채의 대담, 최재봉 기자의 기사와 산문, 김형수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태도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다음, 그는 문제는 장편대망론이 아니라 문예지라는 제도 속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소설을 쓸 것인가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장편대망론의 대부분이 공적자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에 집착함으로써 ‘국가’에 투항하는 문학이 되고 있다는 비판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와비평] 8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학평론가 김미정 씨가 새로운 편집동인으로 합류했다. 편집동인의 수가 늘어났으니 잡지의 내용도 앞으로 더욱 풍성해지리라 기대하며, 또 다른 젊은 편집동인들의 합류를 기다린다. 출발 당시에 약속했던 것처럼 우리는 [작가와비평]이 몇몇 평론가들만의 사적인 공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늘날 ‘문학잡지=권력’이라는 인식의 확산에는 잡지를 자신들의 사적 전유물로 만들어버린 비평가들의 잘못이 크다. 타자성과 이질성을 운운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편집하는 잡지는 지나치게 균질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온 그들의 ‘윤리’를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잡
도 없고, 타자성도 없고, 그러므로 공간의 균질성이 공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창조적 불가능성도 없다. 그들의 ‘윤리’와 ‘정치’는 단지 씌어진 ‘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작가와비평]은 지면을 차이와 주장이 공존하는 광장으로 개방할 것이다.


2008. 10
편집동인 고봉준, 김미정, 이경수, 정은경, 최강민을 대표해서
고봉준 씀

통권 9권 / 발행일: 2009.04.30 / 발행처: 글로벌콘텐츠 / 328쪽/신국판/15,000원 / 구입문의: 02-488-3280 또는 서점 및 인터넷서점 / 메일: wekore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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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8호를 발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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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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