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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작가와비평

작가와비평 12호: 프리터와 한국사회




[작가와비평 12호를 발간하며: 뜨거운 열정을 위하여]

정전 상태의 한반도는 현재 전쟁 중이다. 그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다져진 교류와 협력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포연 속으로 사라졌다. 권력 세습으로 국가적 결속을 다져야 하는 북측의 내부 상황과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도발 행위로 규정한 남측의 대응전략이 맞부딪친 자리가 바로 서해의 화약고, 연평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해석도 극단적으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연평도 사태에 있어 초기 대응에 미흡했던 우리 군의 안이함을 지적하는 동시에, 앞으로 강력한 대응과 단호한 보복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이명박 정권 내내 일관되게 진행되어 왔던 대북 적대정책을 문제시하면서 정권 이양기에 있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호국훈련을 왜 NLL지역에서 해야만 했는가 하는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해묵은 이념 갈등을 반복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넌더리가 나기도 한다.
연평도 소식을 접하고 진노(?)했다는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이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를 서해에 급파하고, 서둘러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이처럼 또 다른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무력 시위는, 작금의 한반도 긴장 상태를 푸는 해법이 될 수 없다. 보복을 이야기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모든 발언과 군사적 행동들에 선동 당해서는 안 된다. 집권세력이든 미국이든 보수언론이든, 전쟁을 책동하는 모든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악의 축’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국토가 연평도처럼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어디 한 번 붙어보자는 식의 감정이야말로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쟁과 보복이 아니라 반전과 평화이다. 평화는 구걸해서는 안 되겠지만, 전쟁이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연평도 주민에 대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G20 의장국으로서 국격이 올라갔다고 선전하면서도, 연평도 주민들을 낮인지도 밤인지도 모를 찜질방에 집단수용한 것은 과연 국격을 올리는 일인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현재 우리나라의 위기 대처 능력과 그 수습 과정을 보면, 후진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여 발의 포격을 당하고도 고작 K9 자주포로 80여 발의 포탄을 엉뚱한 곳에 쏘아댄 자들이 국방력 증강을 이야기하는 것도 한심한데, 아늑한 회의실에 모인 군면제자들이 군복무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병력이 모자라서 이번 연평도 교전에서 대패했다는 얘긴가. 군 기강을 바로 잡고, 군을 정예화・과학화해야 하는 것이 선결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사병 숫자나 늘리겠다는 생각이 말이 되는가. 우리나라의 위정자라는 사람들이,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자들의 생각이, 고작 이 수준이다.
이러한 어지러운 세상의 문제에 다가가고, 뜨거운 언어의 와동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이 문학하는 자들에게 부과된 시대적 소명이다. 속물과 동물이 되기를 강요하는 시대에 맞서, 우리 시대의 허위와 상처의 근원을 탐구하는 행위야말로 우리의 책무다. 문학하는 자는 어디를 응시해야 하는가. 존재의 밑바닥이다. 우리 비평전문지 『작가와비평』은 창간 이래, 대중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비평행위를 추구해 왔다. 아카데미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시대와 현실에 대해 과감하게 발언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학의 연구실에서 작성되는 논문의 독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며, 그것이 이 사회에 기여하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자기 밥그릇이나 지키는 보신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평은 이러한 모습으로부터 자유롭다. 비평은 무엇이든 물고 꼬집고 씹을 수 있는 장르다. 이러한 잡스러움이야말로 문학의 생명이며, 비평의 유연함도 여기서 나온다.
이번 『작가와비평』 12호에서는 특집 좌담을 마련했다. 본인(김정남)의 사회로 문학평론가 백지은, 전성욱, 임태훈, 이선우 씨과 함께 진행된 좌담에서는 우선 그간 평단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비평과 윤리’의 문제를 재검토하는 것을 시작으로 ‘트랜스 크리틱’, ‘문학의 소통방식과 문학제도’, ‘비평의 전문성과 대중성’, ‘문단 시스템과 비평의 역할’을 주요 의제로 허심탄회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현장 비평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들의 고민과 비평적 열정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다.
또 하나의 특집 코너는 프리터(freeter)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와 함께 찾아온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결국 노동자의 자발적/비자발적 고용의 불안정성을 낳았다. 이러한 문제는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자본・노동의 관계로 해석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다변화된 노동환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근무연한도, 조합도, 보험도 없는 이들이 스스로를 ‘고용난민’으로 생각하고 있든, ‘유목적 존재’로 여기고 있든 간에 이들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 과연 이들이 누구와 싸워야 하며, 또 어떻게 싸워야하는지 말이다. 또 이들이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조정환은 노동환경의 재구성의 맥락에서 프리터의 위상을 점검하고, 프리터와 자본의 싸움이 ‘자신이 욕망하는 자유로운 노동의 삶을 집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상진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실업자’를 의미하는 ‘프레카리아’의 ‘비참한’ 이슈를 제기하면서, 이것이 공동체적 문제로 전화되지 못하는 사회적 상황을 고민하고 있다. 양돌규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프랑스의 학생운동과 빈곤에 맞서는 일본의 프레카리아트 운동과 우리나라의 ‘청년 유니온’ 결성의 의미를 검토하면서, 청년 불안정노동자의 현실을 타개할, 기존의 노동운동의 틀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에 대하여 고민한다. 정은경은 최근 한국 소설에 나타난 ‘프리터’의 형상들을 살펴보면서, “자율적으로 삶과 노동을 기획, 설계하여 ‘다른 미래의 삶’의 단초를 열어가는 능동적인 프리터”에 주목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성규는 김사과, 윤고은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이같이 비루한 현실과 ‘맞짱’을 ‘잘’ 뜨는, 이른바 ‘미적 전율을 생성’하는 미학적 고민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문제와 머리를 싸매고 싸워준 조정환, 전상진, 양돌규, 정은경, 장성규의 글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노동환경의 패러다임과 이에 대한 문학적 응전을 함께 고민하시기 바란다.
이번 호 ‘쟁점 비평’에서 손종업은 신경숙 문학의 새로움이 ‘실은 늦음에서 연유하는 시대착오적 감각’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신경숙 문학의 한계를 비판한다. 최강민은 용산참사로 상징되는 악순환적 도시 재개발을 비판하면서, 최근 이를 주제화시킨 소설들을 통해 우리 시대 소수자의 절박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오현철은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논하면서 범죄성 삼성과 이를 은폐하고 비호하는 국가권력의 비도덕성에 대하여 상세하게 짚어주었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널리 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서평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현철은 삼성공화국으로 상징되는 침묵의 금기에 도전하는 글을 통해 진보의 목소리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조영일은 『百의 그림자』의 저자 황정은과 이 작품에 대해 해설을 달은 평론가 신형철, 이 둘의 만남을 통해 비평의 윤리를 점검하고 있다. 일종의 메타비평이라 할 수 있는 이 글을 통해서 신 씨가 보여준 것이 ‘몰락의 에티카’인지 ‘에티카의 몰락’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공교롭게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와 신형철의 주례사비평을 비판하는 것은 최강민의 글에서도 보이고 있다.
문학은 안락한 서재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비루한 현실과 함께 뒹굴지 못하는 글은 모두 가짜다. 내가 비천하고 부당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데 나는 조금도 쪽팔리지 않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자들은, 고민하는 척하는 포즈로 자신과 독자들을 기만하는 자들이겠다. 경제학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실제로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하루에도 수백 편의 논문을 생산하고 있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 대해서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가. 산술적인 데이터로 현상만을 읽어내는 안이함으로는, 이 세계를 파국과 질곡으로부터 건져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함께 뒹굴고 아파할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다. 이번 호를 통해 우리 비평의 열렬한 현장을 맛보기시기 바란다.
끝으로 김미정 씨가 개인적 사정으로 편집동인에서 나가게 되었다. 그 분의 건필을 빌며, 현 편집동인들은 보다 새로운 결의를 다지고자 한다. 우리는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편집동인을 추가로 영입하여 내부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시대와 현실에 과감하게 발언하는 『작가와비평』의 내일에, 따가운 질책과 애정 어린 시선 부탁드린다.

2010년 초겨울
편집동인을 대표해서 김정남이 쓰다
『작가와비평』 편집동인 최강민・이경수・고봉준・정은경・이선우・김정남

追記 : 편집동인 이경수 선생님께서 투병 중에 계시다. 선생님의 빈자리가 크다. 부디 용기 잃지 마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속히 쾌유하시길 빌고 또 빈다.

[목차]

<<특집>> 프리터와 한국사회

노동의 재구성과 프리터 / 조정환
프리터의 정치학 : 다중(Multitude), 아니면 불가능한 계급(unmögliche Klasse)? / 전상진
프리터, 88만원 세대, 기업 사회를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운동’이다 / 양돌규
프리터, 자유의 기획? / 정은경
비루한 현실과 맞짱뜨는 소설들 / 장성규

<<
좌담>> 비평의 현재와 새로운 미래
/ 김정남・백지은・전성욱・임태훈・이선우

<<쟁점 비평>>
신경숙의 시대에 묻다 / 손종업
철거민의 절규와 계급전쟁, 그리고 문학적 대응 / 최강민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와 한국 사회 / 오현철
에티카의 몰락 : 황정은과 신형철 / 조영일

[도서정보]

도서명 : 작가와비평 12호

발행처 : 작가와비평
엮은이 : 작가와비평 편집동인
전   화 : 02-488-3280 / 팩   스 : 02-488-3281
ISSN 2005-3754 12
276쪽/신국판/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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