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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작가와비평

경향신문, <작가와 비평> 언론 보도 내용

저항과 순응, 키덜트 문학의 두얼굴
이영경기자

ㆍ문예지 ‘작가와 비평’ 2000년대 작품 분석

지난해 하반기 대중문화계는 원더걸스의 ‘텔미’ 열풍이 뜨거웠다. 세라복 차림의 소녀들, 복고적인 디스코풍의 리듬, 반복되는 후렴구는 대중문화에 심드렁해 있던 30, 40대 남성 팬들을 움직이게 했다. 이른바 ‘삼촌팬’, 나이 먹은 ‘빠돌이’의 출현은 대한민국 아저씨들이 ‘키덜트’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키워드의 하나였다.

키덜트 문화는 2000년대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에서 새로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반연간 문예지 ‘작가와 비평’(글로벌콘텐츠)은 최근 발행한 하반기호에서 ‘2000년대의 문화지형과 키덜트’라는 특집기획을 통해 2000년대 생산된 문학을 키덜트라는 개념을 통해 들여다봤다.

문학평론가 최강민씨는 ‘키덜트 가면 속의 두 얼굴, 체제 저항과 순응 사이에서’에서 소설가 박민규를 키덜트적 세계관에 바탕한 대표적 작가로 뽑는다. 고글안경을 쓰고 파격적 패션을 선보이는 등 작가 자체로 ‘키덜트적’인 박민규는 만화나 동화에 등장할 법한 비현실적, 환상적 상상력을 동원해 현실을 전복하려 든다. B급 내지 3류로 취급됐던 하위문화 요소의 적극 활용, 예측불허의 황당무계한 이야기 전개가 박민규 소설의 특징이다. 박민규는 장편 <지구영웅전설>에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상상속 ‘영웅’들을 현실세계로 끌어들어와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를 가볍게 비틀어 풍자한다.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삼미슈퍼스타즈는 승자독식주의와 적자생존의 현존 질서를 거부하는 이단아로 재평가됨으로써 독자의 고정관념을 해체해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을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편혜영의 창작집 <아오이가든>,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도 만화적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들로 꼽았다.

그러나 키덜트가 마냥 즐겁고 유쾌한 세계만은 아니다. 최씨는 키덜트의 이중적 면모를 지적한다. 아이 같은 어른에게 어린 시절은 자유롭고 편안한 유토피아이지만, 어른 같은 아이에게 어린 시절은 하루속히 벗어나야 할 절망과 감옥이다. 이재웅의 장편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는 그런 ‘늙은 소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부모를 잃은 12세 소년에게 자본주의 풍요 속의 절대적 빈곤은 ‘인간’이기보다는 ‘잔인한 괴물’이 되고 싶게 만든다.

최씨는 키덜트 문학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직된 이분법을 거부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확충시키고 세대 간 갈등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그러나 키덜트 문학이 현대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 위해선 자본주의의 소비상품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밖에 문학평론가 고봉준씨는 ‘아이, 그 반(反)성숙의 주체성’에서 2000년 이후 발표된 김행숙, 이현승 등의 시에서 ‘어른’의 세계를 거부하고 성장을 거부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읽어낸다. 이들이 어른 세계의 질서를 거부하면서도 자신들이 새로운 질서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소설가 윤이형씨는 ‘키덜트 세대의 문학’에서 키덜트들이 문자 메시지,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평, 게임사이트의 리뷰 등을 통해 주고받는 새로운 소통방식에 주목한다.

키덜트(Kidult) = 아이(Kid)와 어른(Adult)을 합성한 신조어. 몸은 어른이지만 행동이나 취향 중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경쟁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생활에서 벗어나 재미를 찾으려는 현대인들의 일탈심리,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현대 자본주의의 기획된 소비문화 등이 키덜트의 탄생 배경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열광하거나 프라모델 수집에 열을 올리거나, 만화 혹은 게임에 빠져 있는 직장인들이 바로 키덜트들이다.

<이영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