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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꽃은 왜 아름다운가](장혜영 장편소설, 책 속으로)



 

도서명: 꽃은 왜 아름다운가(상・하)
지은이: 장혜영
펴낸곳: 작가와비평
국판 변형(148×200) / 상 328면, 하 316면 / 값 각권 11,000원
발행일: 2011.08.30
분야: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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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판다는 희귀동물이라지? 암수 딱 두 마리뿐인데 하나가 죽으면 대가 끊어지지 않을까?”“소나 개는 자기 새끼와도 교배를 하거든. 판다도 아마…….”“되지도 않을 소리야! 제 새끼랑 어떻게 교배를 해? 그건 천륜을 어기는 거잖아.”“윤리라는 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야. 자연의 섭리엔 그런 거 없어. 성경에도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다음 성관계를 가져 후사를 잇는 기록이 있잖아.”“그럼 불륜도 한계가 있고 조건부라는 거잖아. 적어도 자연계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고.”“세상에 절대적이라는 건 없어. 모두가 상대적이지. 도덕보다 더 중한 게 종족의 존속과 욕망일 수도 있다는 거야.”

“사람들은 단풍의 황홀한 경관에만 도취했지 저 단풍이 나뭇잎들의 죽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아름다움!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최후의 만찬! 죽음의 만찬 같은 거 있죠. 그래서 전 단풍을 보면 항상 쓸쓸하고 비장한 느낌이 들어요. 나뭇잎들이 생을 마감하면서 흘리는 피 같아서…….”“아름다움의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흙에서 자란 생명이 죽어서 다시 흙이 되어 생명을 기르는, 죽음과 삶의 그 순환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죽음은 추하고 생은 아름답다고 단순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거구요. 죽어가는 저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도 거기 있을 것 같아요.”“아름다움은 그 순결성에 있어요. 무엇인가 추하다면 그 속엔 순결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하긴 사랑이라는 게 꼭 프러포즈나 하고 스킨십이나 한다고 사랑이겠는가. 그것은 저급 취미를 자극하는 불건전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나 유행하는 천박한 행동일 뿐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통한다. 지혜에 대한 그 종잡을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다름 아닌 연정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눈덩이 굴리듯 커져만 간다. 그러나 원통한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서로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이 순간에 지혜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 향미 씨가 조금도 지혜 씨보다 못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향미 씨는 정직하고 착한 분입니다. 지혜 씨의 결백이 오늘까지 지켜질 수 있었던 게 모두 향미 씨의 덕분 아닙니까. 향미 씨도 지혜 씨 못지않게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제가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나요?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지요?”“진심입니다. 지혜 씨가 여기 이 아름다운 꽃송이라면 향미 씨는 이 꽃송이를 피워낸 여기 이 흙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검고 더러운 것 같지만 가슴 속에 비옥한 영양분을 품고 있는 깨끗한 것이지요.”

“아버지, 절 낳아주시고, 세상을 보게 해주시고, 사랑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얼마 전까지도 사실 아버지를 속으로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생명은 더러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이 단풍에서 무엇을 느끼려고 구름처럼 몰려드는 거죠?”“아름다움이겠지요.”“죽어가는 모습이 뭐가 그리 아름다울까요.”“꽃이 피는 것도 아름답지만 죽어서 새 생명을 키우는 흙이 되는 희생정신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나뭇잎이 썩고, 썩은 그 흙이 없으면 꽃이 어떻게 피겠습니까.”